10월부터 급속도로 무기력해졌다. 지금 돌이켜 보면, 원인은 다양하다. 일단 8, 9월에 너무 열심히 살았다. 주말도 빠지지 않고 새벽에 일어나면서 피로가 복리처럼 계속 쌓였던 것 같다. 이로 인해 평생 지속할 수 있는 생활 루틴을 가져야 한다는 걸 깨달았다.
집에서 일이 잘 안되어서 9월 내내 카페에 가서 일을 했는데, 거기까진 그럭저럭이었다. 그럭저럭이었던 이유는 오후에 집에서는 일이 그다지 잘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거실에 있는 책상이 일하는 공간이 아닌 놀고 쉬고 하는 공간으로도 같이 쓰이고 있어서, 책상에 앉아서 일을 하다가도 다른 곳으로 집중력이 분산되기도 했다.
하지만 카페 의존성이 심해지면서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는데, 이는 장이 안 좋아지면서였다. 10월 초에 장염 비슷한 증상을 오래 겪으면서 카페에 갈 수 없게 되었다. (물론 허브티를 마시면 갈 수는 있다. 하지만 카페까지 가서 커피와 수프를 못 먹는 건 우울 그 자체였다.) 카페에 갈 수 없다 보니, 카페에 최적화된 내 삶의 패턴이 무너져버렸다. 카페에서 일을 하고 글을 쓰고 책을 읽어야 하는데, 그걸 하지 못하니까 우울하고, 집에서는 모든 일들이 잘 안되고. 우울의 늪에 빠져버렸다.
회사 생활을 지속하기 위해서 결단을 내야 했다. 그래서 카페를 더 이상 가지 않고, 집에서만 일하기로 결정했다. 또, 업무 책상에서는 오로지 업무만을 하기로 결정을 했다. 그렇게 되면서 오히려 집에서는 일이 잘 되긴 했다. 하지만 새벽에 일어나자마자 카페에 가서 영상을 편집하고, 책을 읽고, 글을 쓰는 내 패턴은 더 이상 이어 나갈 수 없었다. 일어나자마자 집에서 개인 작업을 하면, 업무보단 개인 작업을 계속하고 싶어서, 업무로의 전환이 잘 안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일어나자마자 일을 할 수밖에 없었다.
개인 작업이 없는 아침이란 내게 더 이상 일찍 일어날 필요가 없는 삶을 의미했다. 그냥 대충 8시에 일어나서 9시에 출근하는 삶이 시작되었다. 퇴근하고 개인 작업을 해보려고 했지만, 퇴근 후에는 그냥 쉬고 싶어서 개인 작업은 더 이상 하지 않게 되었다. 이런 일상이 반복되다 보니, 무기력증에 빠져버렸다.
무기력증은 주말로도 옮겨갔다. 주말에는 시간이 많은데도 불구하고, 굳이 내가 왜 개인 작업을 해야 하지?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맛있는 것도, 먹고 싶은 것도 먹을 수 없고, 카페도 못 가고, 커피도 못 마시고… 계속 기운이 없었다. 운동은 돈을 냈으니 하는, 일주일에 한 번 하는 축구 외에는 할 수 없었다. 달리기, 산책 모두 중단되었다. 주말 내내 온종일 누워있기 시작했다. 한 번 집 밖으로 안 나가기 시작하니, 계속 안 나가기 시작했다. 아니 나갈 수 없었다는 표현이 적절할 수도 있다.
17주 동안 열심히 해오던 주간 일기 챌린지도 한 주를 놓치고 나니, 의욕이 확 사라져 더 이상 지속할 수 없었다. 왜냐하면 6개월을 한 주도 빠지지 않고 내리 해야 맥북이든, 해외여행 상품권이든 받을 수 있는 기회가 생기는데, 그게 다 도루묵이 되었기 때문이다. 주간 일기, 회고도 적지 않으면서 내가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 더 이상 생각하지 않기 시작했다.
이사 오면서 가을에는 광교 호수 공원의 단풍을 꼭 보고 싶었는데, 절정은 보지 못하고 집에만 갇혀 있었다. 그 시간들이 불행했던 건 아니지만, 그냥 무기력했다. 축 처졌다. 그렇게 한 달을 보내고 나니, 더 이상 열심히 살 수 없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나는 이렇게 무기력하게 계속 살 수밖에 없는 걸까. 부정적인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물기 시작했다.
그래도 브이로그 업로드마저 미룰 수는 없었다. 그래도 이건 이미 습관의 영역에 자리 잡은 거라 하루 안에 처리가 가능했다. 생각해 보니, 그래. 나에게는 아무 생각 없이 해내는 습관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다시 생활 패턴도 재정비하고, 습관을 하나씩 만들어 나가자는 생각이 들었다. 읽다가 만 <아주 작은 습관의 힘>을 펼쳐서 다시 읽기 시작했다.
아직은 11월 초반이라고 생각한다. 11월부터는 조금은 달라진 삶을 살 수 있지 않을까. 나 자신이 부담 갖지 않을 수 있는 선에서 작은 기대를 해 본다.